금융권 채용 모범규준…빛 좋은 개살구 될까

김혜리 기자 / 기사승인 : 2018-10-31 12: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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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지시` 메모…"채용은 기업의 재량" 주장하는 은행

(이슈타임)김혜리 기자=지난해 10월부터 금융권은 `채용비리 폭풍`에 휩쓸리자 은행연합회는 `채용비리 모범규준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법제화되지 않은 이 `권고사항`이 금융권 수장의 가치관보다 앞선 `공정한 채용`의 첫걸음이 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26일 채용비리와 관련해 사법부의 첫 판결이 나왔다. 구속 기소된 KB국민은행 전·현직 직원들의 검찰 공소장에는 `회장님 지시`라는 메모를 받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있는 등 채용비리 진행과정이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회장님` 메모는 KEB하나은행에서도 발견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EB하나은행의 지난 2013년 신입 행원 채용에서 최종 합격한 지원자 추천인이 `김○○(회)`이며, (회)가 통상 회장이나 회장실을 뜻한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이 밖에도 시중에 알려진 금융권 채용비리는 회장 또는 행장의 지시로 고위 간부의 자식·친인척의 손녀·고학력자·남성을 채용하려는 조직적인 움직임 속에 벌어졌다. 공정하리라 믿었던 금융기관의 채용관(觀)이 다른 업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뒤떨어졌던 셈이다.

금융기관 수장의 그릇된 채용관은 메모뿐만 아니라 `말`에서도 드러났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지난 8월 진행된 첫 재판에서 "채용은 기업의 자율 권한"이라며 "하나은행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법상의 단체로서 사기업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채용의 재량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변호인도 "은행장은 최종 인사권자로서 어떤 사람에게 면접 기회를 더 줄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며 "특정인에게 면접을 보게 할 기회를 주라고 얘기한 것은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행장들의 발언을 미뤄보면, 모범규준만으로는 금융기관이 채용에 관해 가진 가치관을 재정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모범규준안은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가 장기간에 걸쳐 만든 채용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에서, 채용비리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대다수의 은행이 이러한 내용을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권고사항`에 그친다. 필기시험을 도입하고 채용 과정에 외부인사를 투입한다는 은행권의 계획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한바탕 채용비리 홍역이 지나고, 현재 금융권에서는 하반기 채용을 진행 중이다. 금융권 취업준비생은 "채용은 기업의 재량권"이라는 말에 찔리면서도 달려들 수밖에 없다. 얄팍한 모범규준만이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의 유일한 버팀목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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