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거짓

고영상 변호사 / 기사승인 : 2018-08-21 14: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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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이슈타임)고영상 변호사="변호사님, 도대체 제 말은 왜 안 믿어주죠?"

 

의뢰인과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심심찮게 듣는 소리다. 수사기관에서 수사관 내지 검사가, 재판에서 판사가 내 말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고 상대방 말만 듣는다는 푸념이다. 사법절차가 원고와 피고, 고소인과 피고소인, 검사와 피고인 등 상반된 입장을 가진 당사자의 다툼을 전제로 하므로 전혀 다른 주장이 충돌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돈을 대여했다, 아니다 증여이다', '사실혼이다, 아니다 단순한 동거이다', '강간이다, 아니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이다' 등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장 속에서 진실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명백한 물적 증거가 있어 누구나 쉽게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재판까지 온 대부분의 사건은 이런 증거가 없다.

 

형사 사건의 경우에는 더욱 민감하다. 수사 도중 구속이 될 수 있고 판결에서 실형을 받을 수 있으므로 해당 범죄의 요건이 명백하게 성립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기, 횡령 등 경제 범죄는 은행 거래내역 등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성범죄같이 범죄 성질상 피해자의 진술 이외 뾰족한 증거가 없는 경우 피해자 증언이 믿을만한지, 반대되는 범죄 혐의자의 진술에 거짓은 없는지 판단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만만치 않다.

 

특히 명백한 증거가 없고 당사자 진술만 존재하는 경우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모두 불러 대질조사를 하는데, 아무리 철저하게 거짓말을 구성했다 하더라도 돌발적인 질문 등을 받으면 당황하고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천천히 진실의 문을 찾아갈 수 있다.

 

그런데 간혹 당사자의 진술 모두가 그럴듯하고 일관적인 경우도 있다. 내 의뢰인 말이 진실인데 상대방의 주장 역시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고 일견 납득이 되는 측면도 있다. 지나온 과거는 하나인데, 시나리오가 두 개이고 양 시나리오 모두 설득력이 있는 경우로 길고 어려운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수사 내지 재판을 진행하면서 증거를 찾거나 요구하면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내 말이 당연히 진실이고 상대방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데, 무슨 증거가 필요하며, 왜 이리 시간이 많이 걸리냐고 불평을 터트린다. 당사자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수사 내지 재판 과정에서 확정되는 사실은 진실이 아닌 증거에 의해 입증된 사실이다. 이것이 재판, 넓게 보면 사법절차의 한계이다.

 

가족, 친구들이 언론에서 이슈가 된 사건에 대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유죄 또는 무죄인지 많이들 물어본다. 모른다고 하면 변호사가 그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고, 증거가 이렇고 진술의 신빙성이 저렇고 얘기를 하다 보면 지루함이 묻어난 표정이다.

 

하지만, 어느 사소한 사건이라도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며 단순히 감만 가지고 확정해서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법령을 제정하여 수사 및 재판 절차를 규정하고 절차를 수행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제도를 공정한 전문가들이 제대로 운영하면 진실의 문을 찾을 확률은 높아지며 사회 구성원들도 사법절차를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되는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그 절차가 왜곡, 남용되면 당연한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폐단이 지속되면 사법절차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그러한 불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생긴다. 사법제도에  사회 구성원의 끊임없는 견제와 감시가 필요한 이유이다. 진실과 거짓 판단은 해당 사건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에게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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